이만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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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감독 인터뷰

 

 

 

 

멘토 인터뷰
Never Ever Give Up!
프로야구 레전드, 이만수 감독
2020년 03월 26일


 


대한민국 야구팬 가운데 ‘이만수’를 모르는 이는 없다. 프로야구 1호 안타-타점-홈런의 주인공이자 최초의 타자 트리플 크라운, 역시 최초의 100호 홈런, 200홈런을 달성한 선수. 지도자로서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코치로 활약하며 우승 반지를 거머쥐고 SK와이번스 감독에 이르기까지 항상 최고의 길을 걸었던 레전드. 그런 그가 지금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6년째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다시 한번 야구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인생에서 찾은 가장 행복한 순간
라오스 야구의 아버지, 라오스 야구 전도사 …. 이제 라오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이만수 감독은 50년 야구 인생 가운데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프로야구 감독에서 물러난 직후인 2014년 이만수 감독은 몇 해 전 지인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시 재능기부만 하고 돌아올 목적으로 라오스로 향했다. 평생 한 번도 야구공을 잡거나 글러브를 껴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그 일이 자신의 전부가 될 줄은 본인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을 꼭 껴안으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야구인으로서 받은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결심한 그의 야구 재능기부는 어느덧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에 그는 학생들의 훈련은 물론 생활 전체를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라오스에 야구협회를 설립하고 최초의 야구장까지 건립하며 라오스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현역 시절은 물론 지도자로서도 최고의 위치에만 있었던 이만수 감독은 야구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 항상 의구심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라오스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재능을 나누며 여전한 야구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다짐한다.

“말만 내뱉고 행동하지 않으면 누구도 저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면 그게 저여도 됩니다. 어차피 인생은 모험이고, 그것을 극복할 때 새로운 길도 열리니까요.”

Q. 50년 야구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말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50년 동안 야구 경기를 하면서 팬들에게 사랑만 받았습니다. 2014년 10월 말에 감독에서 물러나고 ‘남은 인생은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겠다’라는 생각에 한 달 뒤 야구 불모지 라오스로 떠났습니다. 야구팀과 협회를 만들고 야구장을 건립한 것이 어느덧 6년째가 됐습니다. 현역이나 감독 시절에 높은 자리에 오르면 늘 행복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사실 최고가 된 기쁨은 일주일도 안 가더군요.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말할 수도 없이 심했고요. 대신 현장을 떠나 라오스에서 봉사한 모든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Q. 라오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지금까지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SK와이번스 감독 2년 차 때 지인이 겨울에 시간 되면 라오스에 와서 재능기부를 한 번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 감독은 시즌 끝나도 시간이 나지 않아요. 바로 거절하면 민망할까 봐 둘러서 시간 되면 한 번 건너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걸 그분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잊을 만하면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 그만두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갔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죠. 아이들을 뿌리칠 수 없어 결국 1년을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계속 학업과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 2년째부터는 지도자를 파견하고 대신 저는 후방에 나와 돕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라오스에서 야구를 전파하면서 가장 보람된 때는 언제였습니까.
2018년 8월 말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습니다. 사실 당시 저희 팀은 야구를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되어 출전이 불가능한 실력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출전을 약속한 일이 있어 참가했죠. 또 하나는 처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하나같이 하루 세끼 밥 먹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과연 야구로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의 인생관이 야구를 통해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꿈을 다시 물으니 어떤 아이는 의사가 되겠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정치인, 사업가, 교사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감독님처럼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아이도 두 명이나 있었고요. 너무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Q. 단순히 야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육과 교육도 지원하시는데요.
라오스가 못사는 나라이다 보니 제일 큰 문제가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너무 중요한 문제라 야구센터에서 불우한 청소년들을 보육하며 등록금도 지원하고 먹이고 재우고 합니다. 지금은 16명이 센터에 있는데 경비가 만만치 않아 뒷바라지하는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입니다.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2016년 4월 말에 제 현역 시절 별명을 따 ‘헐크파운데이션’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십시일반 기부를 받아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문체부를 통해 대한야구협회 소속 지도자를 2명 파견했고, 우리 재단에서도 2명 파견했어요. 여전히 어렵지만 제 일이 제법 알려져 보다 많은 분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Q. 라오스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재능기부 활동을 엄청나게 하고 계시는데요.
지방 소도시 위주로 어린이 청소년 고교야구 중심으로 아마추어 야구 확산을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있습니다. 또 이만수 포수상과 홈런상을 만들어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활동이 알려지면서 팬들로부터 왜 국내는 안 하느냐는 말씀 듣고 시작해 매년 50군데 이상 다니고 있습니다. 덕분에 현역 시절에는 적어도 1년에 절반은 집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아예 집에 못 들어갈 만큼 더 바쁘게 타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다가 지난해에 통풍도 오고 여기저기 건강에 경고등이 켜져 올해부터는 활동을 반 정도 줄일 생각입니다. 환갑이 지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Q. 지금 다시 프로야구 현장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가 감독을 맡았던 SK와이번스가 최근 몇 년간 타격이 가장 다이내믹한 팀이 되면서 요즘 부쩍 많은 팬이 현장 복귀를 말씀하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감독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조금 있으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주위에서 많이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현장에 돌아가면 라오스 활동을 뒤이어서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50년간 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제 현장보다는 말이 잘 안 통해도 라오스 아이들에게 저의 재능을 기부하며 지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늘 라오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Q. 최고의 선수로 은퇴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감독에서 내려와 라오스로 떠나는 등 늘 도전하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역 시절 항상 선진야구를 배우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로 나서는 것 대신 유학을 택했습니다. 1~2년 하고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10년간 있으면서 코치도 하고 우승도 했습니다. 돌아와 그 경험을 국내에 접목하면서 현실과 많이 부딪쳤습니다. 지도자라면 근엄하고 과묵해야 하는데, 저의 액션들은 한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지도자들이나 언론에게 오두방정 떤다, 가볍다 해서 욕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감독이 팬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그렇게 하죠.

라오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활동은 개척자로서 새롭게 도전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로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후배들이 따르지 않으니까요. 팬들의 사랑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는 반드시 돌려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화려했던 경력의 선수 출신 프로야구 감독이 오지에 가서 6년째 재능을 기부하고 광고 수입도 기부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이제 따라오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잠시 배운 어느 국내 선수로부터 프로가 되지 못해도 나중에 감독님처럼 봉사하겠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Q. 사우 여러분께 야구의 재미와 매력을 소개해 주신다면?
야구는 규칙이 매우 복잡한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도 매력이 많은 스포츠입니다. 먼저 탁 트인 그라운드가 있고 열띤 응원이 있어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즐거워집니다. 또 조금씩 알게 되면 본인이 감독이 되어 다양한 구상을 할 수 있어 야구에 빠지게 됩니다. 야구만큼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는 스포츠도 없으니까요. 아울러 야구는 통계가 가장 많고 적중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죠. 미국인들은 스포츠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고 합니다. 야구는 물론 농구,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되면 부부나 친구끼리 그보다 좋은 취미가 없을 듯합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쉽게 취소됐지만 2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6회 한국-라오스 국제야구대회 준비로 바빴습니다. 라오스 선수들에게 야구를 쉽게 알려주기 위해 6년 전 시작한 대회인데 한국 사회인 야구인들이 1인당 100만 원의 경비 부담도 마다하지 않고 참가해 매년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올해는 작년 12월 말부터 베트남에서도 재능기부를 시작해서 라오스와 베트남을 열심히 오가며 활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아울러 감독님이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것은 2년 후에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라오스 팀이 1승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향해 지금 선수들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Q. 현대제철 사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 인생 철학이 “Never ever give up”입니다. 저는 인생을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험이 없으면 도전이 없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모험의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전은 불안하고 어려운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쟁취하면 또 다른 도전이 있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행복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멋진 도전을 통해 인생을 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길 부탁드립니다.